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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유래

우리가 항상 메는 넥타이가 전쟁에서 왔다고?

by 랄피위글 2023. 3. 6.

넥타이를 생각하면 무슨 생각이 나십니까? 저는 어렸을 적, 넥타이가 너무 신기한 나머지 아버지가 퇴근하시고 옷을 갈아입으실 때 그 넥타이를 뺏어서 맨몸에 넥타이를 걸치고 웃던 생각이 납니다. 그렇게 어렸던 저는 중학생이 되어 매일 넥타이를 매고 살았고, 지금은 어른이 되어 넥타이를 매야만 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 넥타이가 처음에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궁금하실 거라 강력하게 믿고 넥타이의 유래에 대하여 소개해보겠습니다!
 넥타이는 출근, 면접, 장례식, 결혼식 등 중요한 날이나 특별한 날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도 많이 입는 정장의 마지막 포인트가 되는 액세서리 입니다. 이 넥타이를 처음으로 발명한 나라는 '크로아티아'인데요, 어떤 연유로 언제 넥타이가 등장하게 되었는지 알아봅시다. 젠틀하고 신사적인 느낌의 넥타이의 기원은 놀랍게도 무시무시한 전쟁과 관련이 있습니다. 17세기에 유럽에서 발생한 '30년 전쟁'인데요, 30년 전쟁에 대하여 알아보기 전에 그 전 상황부터 간략하게 알아봅시다. 30년 전쟁을 간단히 표현하면 30년 동안 일어난 종교전쟁입니다. 이 30년 전쟁이라는 명칭을 처음 쓴 것은 17세기의 독일의 역사가이자 역사 평론가인 사무엘 폰 푸펜도르프라고 합니다. 다시 돌아와서, 30년 전쟁은 당시 유럽에서 로마 가톨릭교를 지지하는 국가들과 그에 반하는 프로테스탄트 교의 지지 국가들 간에 발생한 종교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인류의 전쟁사에서 제일 잔인하고 사망자가 많은 전쟁 중 하나입니다. 비극적이지 않나요?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종교를 앞세워 전쟁을 일으키고, 800만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것이. 사실 이 전쟁은 초반의 의도와 다르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반엔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교의 대립으로 시작되었지만, 신성 로마 제국을 둘러싸고 지지 국가와 반대 국가들이 다수 개입하면서, 복잡한 이해관계의 충돌 속에서 전제 군주 제도와 봉건제도 간의 싸움 즉, 정치적 측면의 대립으로 번지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신성 로마 제국은 쉽게 말해 오늘날의 독일 입니다. 아무튼 이 참전 국가들은 수많은 용병까지 고용했습니다. 이때 크로아티아라는 국가의 이야기를 뺴놓을 수 없습니다. 이 나라에서 넥타이가 나오게 되거든요. 크로아티아는 프랑스의 우방 다시 말해, 프랑스에 우호적인 국가로 프랑스에 용병을 파견하게 됩니다. 당시 군복은 셔츠 형식이었기 때문에 격한 몸짓 이후에는 옷매무새가 망가지기 일쑤였습니다. 이는 몸짓을 방해하여 전쟁에 치명적이었습니다. 또한 전쟁 중에는 적군과 아군을 즉각적으로 구분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를 구분하기 위한 수단으로 목에 스카프를 매었습니다. 자세히 말하자면 셔츠 목 부분을 바로잡음과 동시에 붉은색의 스카프로 아군임을 식별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피아식별띠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나중에 이 스카프는 계급장도 겸했는데, 스카프의 색이 소속 부대를 나타내고, 무늬와 장식이 지위를 구분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카프에 착용한 핀이 계급장이었던 것입니다. 이 핀은 넥타이핀의 시초가 됩니다. 앞에서 크로아티아는 프랑스의 우방국가로, 프랑스를 지원하기 위해 참전했다고 했었죠. 프랑스의 왕 루이 13세는 크로아티아 병사들의 목에 감긴 붉은 스카프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호기심이 생겨 자기 부하에게 스카프의 정체에 관해 물어봅니다. 하지만 신하는 루이 13세가 지시하는 것이 스카프가 아니라 크로아티아 병사라고 오해를 하게 됩니다. 이에 크라바트(크로아티아 사람)라고 대답하게 되는데요, 이렇게 크로아티아 병사의 목에 둘린 스카프는 크라바트라고 불리게 됩니다. 여담이지만 아직도 이탈리아어로 넥타이는 크라바트입니다. 다시 돌아와서, 이후 프랑스 왕실과 귀족들은 크라바트에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패션적 시도를 합니다. 루이 14세가 7세 때 이것을 매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귀족들의 대표 패션이 되었죠. 이 많은 시도로 인해 넥타이, 나비 넥타이(보타이) 등등 여러 가지 타이 형태의 패션 아이템들의 시초가 되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리고 옷을 잘 입기로 유명한 에드워드 8세와 오피스에서 근무하는 문화의 확산으로 인해 정장에 반드시 따라붙는 아이템이 되어, 공식 석상에서는 거의 필수로 착용해야 하며 사무 관련 직종뿐 아니라 학생의 교복과 같은 유니폼에서 땔 수 없는 아이템이 되어버렸습니다. 이후 평민층까지 크라바트가 확산하면서, 목에 착용하는 타이라는 이름의 넥타이로 대중화 되어 지금의 넥타이가 되었습니다. 다시 30년 전쟁으로 돌아가 볼까요? 30년 전쟁은 지금의 독일인 신성로마제국의 전역을 질병과 기근으로 황폐화했습니다. 이에 타국에서 파견된 용병들과 병사들은 기여금을 받기 위해 위장 공헌을 하거나 마을을 노략질하기까지 했습니다. 참전했던 국가들의 대부분은 파산 직전까지 몰렸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안 좋은 상황에서도 유럽 내부에서는 신흥 강대국들이 등장했습니다. 1648년에 30년 전쟁의 마침표를 찍은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네덜란드 공화국은 공식적으로 독립을 인정받고 급격히 성장했습니다. 스웨덴, 잉글랜드, 프랑스도 종전 이후 상당한 영토를 보유하게 되었고, 과거의 해였던 신성 로마 제국을 뒤로하고 뜨는 해가 되었습니다. 프랑스는 30년 전쟁 이후 부와 패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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