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은 보통 큰 강을 끼고 나타납니다. 그리고 문명의 이름은 그 강의 이름을 따서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더스 문명도 그렇습니다. 인더스강 유역에서 발견된 문명이기에 인더스 문명(Indus Civilization)이라고 부릅니다. 인더스 문명은 약 5300년 전부터 3700년 전까지 있었던 문명입니다. 인더스 문명은 청동기 문화를 기반으로 한 문명이었습니다. 인더스 문명의 전성기는 약 4600년 전부터 3900년 전 사이로 추정됩니다. 인더스 문명의 위치는 인더스강과 현재 파키스탄과 북서쪽 인도에 걸친 가가하크라강(Ghaggar-Hakra) 사이로 추정됩니다. 가장 부흥했던 시절을 '하라파 문명'이라고도 칭하는데, 그 이유는 처음 발굴된 유적지가 하라파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1920년대에 처음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 계속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인더스 문명의 영역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인더스 문명은 상당히 넓은 영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역에 두 배에 해당하는 영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리적으로 아라비아해에서 인도 타르 사막까지, 페르시아 지역에서 중앙아시아 평원까지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 인더스 문명의 영역에 해당합니다. 대표적인 유적 도시는 모헨조다로, 하라파, 간웨리왈라, 라키가리, 돌라비라 등이 있습니다. 특히 모헨조다로와 하라파는 계획도시로 가치가 높은 유적입니다. 도시들은 인더스강과 지금은 사라진 사라스바티 강을 지나면서 지그재그 패턴으로 분포해 있습니다. 인더스 문명을 남긴 인류의 인종 구성은 다소 복잡합니다. 모헨조다로에서 여러 인골이 발견되었었는데, 인골을 분석한 결과, 오스트레일리아 선주민, 지중해, 몽골, 알프스 인종 등으로 다양했습니다. 서로 언어도 달랐을 것으로 짐작되고, 다른 연구를 보면 문화적 이질성도 뚜렷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하라파, 모헨조다로를 중심으로 번성하던 전성기에는 문화적 동질성도 함께 표현되었습니다. 문화의 동질성과 다양성의 예시로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고고학자 조너선 마크 케노이어는 선행 문명인 인더스 문명의 역사를 크게 식량 생산 시대, 지역화 시대, 통합의 시대, 지방화 시대 등 네 시기로 구분합니다. 식량 생산 시대는 가장 초기의 시기로, 8500년 전부터 7000년 전까지 메르가르 지역에서 나타났습니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흩어진 취락에서 살거나 유목민으로 떠돌아다니면서 밀과 보리를 재배하고, 소, 양, 염소, 닭 등을 사육했습니다. 쌀이 재배된 흔적은 있으나 주식은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쌀 이외에도 콩, 호밀, 참깨, 겨자도 재배한 흔적이 나타납니다. 이곳에서 발견된 작은 사각형 진흙 벽돌 주택은 객실과 창고가 칸막이로 분리되어 있으며, 창고는 주로 곡물 등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도자기 기술이 정교하지는 않았으나, 역청으로 칠해진 바구니가 주택과 무덤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투박하지만 초기 형태의 도자기라고 볼 수 있는 유물입니다. 또한 바다 조개, 동물 뼈, 다양한 색깔의 돌로 만들어진 목걸이와 장신구들이 껴묻거리로 무덤 주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지역화 시대는 건축 기술이 발전하고, 농업과 목축 기술도 발달한 시기입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활 방식이 유목에서 정착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시기적으로는 약 7000년 전부터 5600년 전까지로 추정됩니다. 아울러 녹로로 만든 도자기 등 여러 도자기가 개발됐고, 돌을 갈고 다듬어 장신구로 만드는 보석 세공 기술, 유약 바른 토기와 인장을 포함한 다양한 공예품이 발명되었습니다. 인장에는 기하학적 무늬가 있었는데, 이 인장들은 테라코타, 뼈, 상아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도자기에는 글자가 각인되어 있었는데, 이를 통해 문자가 발명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야금술도 발전합니다. 이처럼 벽으로 둘러싸인 정착지, 다양한 스타일의 도자기와 장신구, 인장의 사용과 가장 기본적인 문자, 무역 네트워크의 확장 등이 나타난 지역화 시대에는 도시화 초기 단계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기술들은 강과 산길로 이어진 교역 네트워크를 통해서 사방으로 퍼져나갑니다. 통합의 시대는 인더스 문명의 전성기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 시기를 하라파 시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시기는 약 4600년 전부터 3900년 전 사이입니다. 이 시기에 인더스 문명에 속한 도시들과 주변 정착지는 현재 파키스탄과 북서부 인도 지역을 지배했으며, 지리적 한계를 넘어선 문화적 융합이 나타납니다. 모헨조다로, 하라파 등 대도시를 건설하고 계층적 사회 질서를 이룩했습니다. 후에 상세히 설명하겠지만 이는 계획도시입니다. 또한 청동기와 구운 벽돌을 사용하고 법과 도량형을 만드는 등 기술적인 발전도 나타납니다. 또한 배수시설, 대중목욕탕, 창고, 곡물 저장소, 사원 등 발달한 도시 시설을 갖추는 등 도시 계획에 따라서 도시를 건설했으며, 새로운 양식의 채색 도자기를 개발하고, 홍옥수를 사용하는 등 장신구 기술을 혁신했으며, 종교적 물건 등에 통일된 상징 문양을 사용했습니다. 또한 의류의 측면에서도 이 시기에 다양한 재질의 옷감과 다양한 색채의 염색 기술이 발달했으며, 남녀 모두 고도로 섬세하게 제작된 장신구를 신체 또는 옷에 달았습니다. 전성기라는 말을 달리 하면 그 이후로 쇠퇴해간다는 뜻입니다. 지방화 시대에 인더스 문명은 문화적 통합 이전 시대로 퇴보합니다. 지역 무역 네트워크와 유물 양식에서는 이전 시대를 계승하지만, 정치 경제 구조가 쇠퇴하고 붕괴하며, 지역별로 작은 규모의 집단들이 출현합니다. 인장, 글, 도량형 등이 사라지고, 매장 관행과 종교의식에 사용하는 물건들에서 변화가 보입니다. 쇠퇴와 멸망의 원인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약 1500년경 전부터 시작된 인도 아리아인의 침입, 인더스강의 범람과 이에 따른 경로 변화, 수백만 개의 벽돌을 굽기 위한 대규모 삼림 파괴, 사라스바티 강의 소멸 등 여러 가설이 제기되지만, 어느 것도 명확한 가설은 아닙니다. 이러한 인더스 문명 최대의 신비 중 하나는 초기 문명과 전성기 문명(통합의 시대) 사이에 연관성이 매우 적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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