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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명사

이집트 문명과 건축물

by 랄피위글 2023. 9. 11.

고대 이집트는 이집트 나일강 하류와 수에즈운하 일대에서 번영한 문명 및 국가를 아울러서 이르는 말 입니다. 최전성기인 기원전 15세기에는 나일강 삼각주에서 제벨 바르카까지 세력을 확장하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에티오피아와 교류가 있었습니다. 기원전 3200년부터 기원전 332년까지 3천년 동안 존재했으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점령으로 멸망하게 됩니다. 이집트는 수로가 잘 발달한 제국이었습니다. 특히 관개 산업에 의존하였던 문명이었는데, 수로를 잘 정비했던 원조 격의 문명이었습니다. 이집트 문명의 영토 대부분은 북아프리카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나이반도는 서남아시아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나라의 해안선은 지중해와 홍해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리비아, 남쪽으로는 수단, 그리고 동쪽으로는 가자 지방과 이스라엘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흔히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로 분류합니다. 나일강은 남쪽에서부터 지중해를 향해 북쪽을 향해 흐릅니다. 이집트의 인구는 대부분 나일강을 둘러싸고 집중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신석기 시대 이후로 시작된 농경과 정착 생활 때문이겠죠. 이 강은 석기 시대와 나카다 문화 시대로부터 근근이 이어져 온 이집트 문화의 심장입니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는 이를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빗대어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음은 이집트 문명의 유명하고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물유적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투탕카멘왕의 보물에 대해서 소개하겠습니다. 영국의 고고학자인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가 1922년 왕가의 계곡에서 투탕카멘의 왕묘를 발견하였습니다. 이 왕묘에서 부장품이 나왔습니다. 투탕카멘의 재위 기간은 9년으로 짧았으나 그의 묘는 완전히 보존된 유일한 왕묘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보물은 예술적 가치가 높고 금을 대량으로 사용한 점이 특징입니다. 미라의 마스크와 같은 귀금속 공예, 보석류 세공, 침대와 의자 같은 목공예, 상아 세공, 석제 용기 등이 출토된 보물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다음은 누비아 지역입니다. 누비아(Nubia)는 아스완부터 제4카타락트 부근까지의 지역을 칭합니다. 고래로 아프리카 내륙부와 이집트에 중개무역을 하는 사람이 많았고, 또 이 지방은 금이 많이 생산되었기 때문에, 역대 이집트 국왕은 누비아를 자기 세력하에 두었으며 여러 곳에 신전과 성채를 설치하였습니다. 아부심벨 신전과 부헨 성이 그 대표적 유적이고 북 누비아의 전 유적지가 아스완 댐의 건설로 수몰되기 때문에, 유네스코가 중심이 되어 세계 40개국의 협력을 받아서 해체 이동 등을 하여 구제되었습니다. 이렇게 유적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피라미드입니다. 피라미드(pyramid)는 일반적으로 정사각뿔 꼴의 고대 유적을 칭합니다. 피라미드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피라미스인데, 이는 삼각형 모양의 과자나 빵을 이르는 말입니다. 이집트인은 “메르라”라고 불렀습니다. 한때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무덤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으나, 대체로 국왕, 왕비 등 왕족의 무덤으로 쓰였을 것이라는 가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왕의 피라미드에서 미라가 여럿 발굴되었을 뿐 아니라 미라가 안치되었던 방에서 매장에 필요한 석관, 항아리, 황금 제품 등이 출토되었고, 부조나 비문 등에서 제사에 쓰였던 글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한반도로 치면 봉분 형식을 보이는 돌무덤 혹은 고인돌에 해당하겠네요. 피라미드에 대해 남아있는 최고의 기록은 고대 그리스 역사가인 헤로도토스의 《역사》 2권에 등장합니다. 이 책에는 '기자의 대(大)피라미드에 관하여 10만 명이 3개월 교대로 20년에 걸쳐 지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노동력 착취가 아닌가 하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1989년에 시행되었던 발굴 조사에서, 피라미드 마을이 발견된 후 사람들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놀랍게도 마을에는 노동자가 살았던 숙소, 공방, 저장고, 물품 관리소, 관리들이 살았던 저택 등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발견된 묘지의 벽화를 보면 사람들이 빵, 맥주, 고기, 채소를 먹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유물과 상형문자를 해독해보면, 마을 사람들이 노예처럼 착취당한 것이 아니라 만족하며 일했음을 시사합니다. 실제 동원된 사람들 숫자도 2만 명 내외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거대한 피라미드는 이전까지 고대 이집트인들의 끊임없는 노력, 건축 기술의 개량과 발전이 바탕이 된 것이며 단시간에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이후 거대한 피라미드가 정점을 이루고, 평민들까지 피라미드를 세울 수 있게 되면서 사람 크기 정도의 작은 피라미드들도 만들어졌다. 마치 진시황릉에 사용으로 만들어졌던 병마용의 크기가 후대에 갈수록 작아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다음은 스핑크스인데, 스핑크스(sphinx)는 사자의 몸에 사람의 머리가 달린 상상 속의 동물입니다. 이 괴물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동남아시아 등 지역의 설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스핑크스라고 하면 흔히 보는 사진은 기자의 대 스핑크스를 칭합니다. 이집트 설화에 등장하는 스핑크스는 사자의 몸뚱이에 사람의 머리를 붙인 동물로 왕권의 상징, 선한 자의 보호신 역할을 하였습니다. 가장 오래되고 큰 것은 이집트 제3왕조 카프라왕의 피라미드에 부설되어 있고, 길이 80m에 달하여 이것이 신왕국 시대에는 하르마키스 신(지평선 상의 호루스)으로서 숭배되었습니다. 카르나크 신전 등의 참도(參道) 양측의 스핑크스는 아몬 신의 신수(神獸)인 양의 머리를 붙여 ‘두 개의 지평선(영토)’의 수호신으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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